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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공포

[공포] 해병대 공군 비행학교 습격사건

by 용호정 2020.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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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8월 7일. 공군 비행학교 후문 근처 정류장에 부산에서 출발하여 진해에 도착하는 마지막 버스가 도착하고, 공군 장교 세 명이 버스 뒷문으로 승차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버스에 타고 있던 술에 취한 해병대 장교 여덟 명이 공군 장교들을 승차하지 못하게 막았고, 공군 장교들이 이를 무시하고 앞문으로 타자 시비를 걸기 시작하였는데요. 그러던 중 해병 장교가 자신의 모자를 뺏어 던지며 희롱하자 참지 못하고 8대 3의 싸움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수에 밀려 공군 장교들은 집단 폭행을 당한 뒤 버스 밖으로 팽개쳐지게 되는데요.

 

 

 

이 광경을 목격한 허도창 공군 상병이 해당 사건을 비행학교에 알렸으며, 정성규 소위 등 공군 동료 장교 16명이 트럭을 타고 버스를 추격하였고, 이들은 웅천에서 해병 장교들을 집단 구타하여 복수를 마치고 돌아갑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사건은 수습 불가능할 정도로 커지기 시작하는데요. 공군 장교들에게 폭행당한 해병장교들은 해병학교에 돌아가 이 사실을 알렸고, 이번엔 해병 장교들이 참지 못하고 사전 계획을 세운 뒤 다음날인 8일 새벽 당직 교육생을 제외한 '129명의 해병 장교'가 진영역에 집결합니다.

 

 

 

그리고 민간인 트럭과 버스에 나눠 타고 김해 공군 비행학교의 입구인 '평강마을'에 도착 후 비행학교를 기습하기 위해 논밭을 포복하며 이동하였는데, 마치 실제 전쟁 상황을 방불케 했습니다. 그렇게 포복으로 도착 후 보초를 서고 있던 공군 헌병 김용만 병장에게서 총을 빼앗고, 내무반으로 안내하라고 위협하여 새벽 5시 50분쯤 내무반에 도착. 아령, 돌, 주먹 등으로 잠들어있던 조종학생을 습격하게 되는데요.

 

 

 

해병대의 일부 병력은 사령실에 침입하여 당직사령인 비행학교 작전과장 최석만 중령에게 학교장과 전날 사고자를 불러 공개 사과를 요구했으나, 비행 학교 측은 이에 응하지 않았고, 오히려 오전 6시 20분 비상소집을 걸었습니다. 이에 장병 300여 명이 뛰어나와 해병 장교 129명에게 덤벼들었고, 400여 명이 얽힌 패싸움은 10여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다 전세가 불리해진 해병장교들은 공군 장병의 추격을 막기 위해 '계속 쫓아오면 비행기를 부수겠다고 위협'했고, 실제로 돌을 던져 비행기 두 대를 일부 파손, 지금까지도 고작 덜 맞으려고 국가의 재산이자 국방 전력을 고의로 파손시켰다는 점이 참 안타깝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공군 장병들에게 얻어맞고 도망가던 해병 장교들은 오전 7시쯤 철조망 밖으로 빠져나가 흩어져 황급히 달아났으나, 이 가운데 이의일 해병 소위가 철조망 밖에 있던 늪에 빠져 사망하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비행기 두 대가 파손되었고, 사망 1명 부상 39명이 발생. 사건을 들은 장지량 공군 참모총장과 강기천 대한민국 해병대 사령관이 현지에 달려갔으며, 국방부는 합동 수사반을 꾸려 현지 조사에 나섰습니다.

 

 

 

결과는 당시 상황이 베트남 전쟁 중이라 장교들이 많이 필요하여 핵심 주동자들만 군사 재판에 회부하고 나머지는 처벌을 면하게 됐는데요. 그리고 사건 발생 이틀 뒤인 10일에 진해 해병학교에서 김해 공군학교를 초청, 자매결연을 맺음으로써 더 이상의 사건 확대를 방지하고, 사건은 종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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